홈 스위트 홈
2014년 『현대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일상성을 허무는 전위적이고 투쟁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소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 『홈 스위트 홈』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직전의 시집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현대문학, 2021) 이후 2년 만이다. 총 48편의 시를 묶었다. 여성 주체의 역사적 고통을 더듬으며 현실의 탈출구를 모색하는 이소호의 시 세계는 성차별, 약자 혐오 등 가부장제 사회의 어두운 잔재를 거침없이 노출하며 동시대의 윤리 회복을 호소한다. “폭력의 장소에서 목격자이자 방관자로서의 제3자의 자리를 과감히 삭제하는 독창성”(장은정)을 드러낸 데뷔 시집 『캣콜링』의 파격적인 목소리는 몰입을 극대화한 전시 공간의 문자화와 미적인 탐구를 거쳐(『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이번 시집에서 밀도를 강화한 시적 자아와 “홈 스위트 홈”이라는 표제를 통해 원초 집단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해부한다. 무의식의 표정을 섬세하게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난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이 작업한 본문 일러스트는 독자의 공감각을 더욱 풍부하게 넓혀준다. “명징하게, 직접적으로,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전시’의 방법을 택함으로써 이소호의 시는 외려 선명하게 들리지 않는 것들이 여전히 빼곡하게 남아 있음을 자꾸만 기억하는, 기억하게 하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홍성희) 이소호의 시는 부지불식간 개인에게 체화된 집단의식의 저변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미래를 모색한다.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된 개인사를 뛰어넘어 자아의 역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도약 지점을 똑바로 겨누면서. 이소호의 시는 적어도 어떤 이야기들에게 사람들의 안락한 우화의 논리에 묻혀버리지 않을 수 있는 텅 빈 자리를 잠시나마 되돌려주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 텅 빔이 ‘나’에게만큼이나 ‘나’의 다정한 이웃들에게도 무작정 덮어놓은 달콤함이 아닌 외로움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연을 구분하는 한 줄의 공백보다 다섯 배, 여섯 배 깊은 묵음에는 ‘쥐’가 아니라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우리 모두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홍성희, 해설 「밥솥이 없는 자리」에서
- 저자
- 이소호
- 출판
- 문학과지성사
- 출판일
- 2023.04.01
문학과지성 시인선 582
홈 스위트 홈
이소호 시집
시집을 읽을 때는 맨 앞 시인의 말을 항상 읽는다.
그것만 마음에 들 수도 있고 그것마저 마음에 들 수 있다.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곳이 볕이 아닌
빛이 드는 곳이라고 해도.
2023년 봄
이소호
집을 떠나고 싶었던 이들은 이 시집에 눈길이 갈 것이다. <홈 스위트 홈>, 스위트한 홈을 가져본 적 없고 저녁을 먹고 난 후 과일을 깎으며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 가족은 미디어에서 조성된 것이라고 여겨 온 이들이라면. 잠깐 드는 볕이 아니라 찬란한 빛이 있다고 해도 돌아가지 않겠다는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어린 시절 바람을 가려준 집이 없어서 아직도 영원히 집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
도로와 비와 서로의 방
반쯤 뜬 눈 사이로 검은 나뭇가지들이 무성히 보일 때 그 틈으로 물이 새고 달리고 있을 때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입김 가득 찬 유리창 위에 손가락으로 씌어진 이름
홈 스위트 홈에 수록된 시들은 우리가 평소 시라고 생각하는 형태를 벗어난 작품들이 더럿 있다. 일러스트까지 있어 에세이를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한 시의 형식으로 말을 하면서 완전하게 정석에서 비껴나 있다. 신기한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