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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당신이 잠든 사이

kaydiary 2024. 11. 14. 23:27

 

나체로 뛰어가는데

나무도 건물도 없겠지

숨을 곳을 찾아 숨을 몰아쉬며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겠지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할 때쯤 이 사람을 깨우리라

 

당신은 지나치게 코를 골고 있다 방금 키스한 듯 빨갛게 번진 입술을 벌린 채

 

보는 사람만 시원해지는 치마를 입고

도무지 밉지 않은 소리를 내며 

스스로 속도와 키를 조절한다

이 소리는 조용한 버스에서 아이스커피를 쭉 들이켠 후 얼음만 남은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꽂고 얼음물을 반복적으로 빨아들이는 소리와 흡사하다

 

잠들기 전까지 이 사람은 보험을 권유하고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친구도 친인척도 없었다

호감이 가는 외모는 아니었다

눈이 빨갛고 손등이 거칠었다

저녁이 다 가기 전에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었다

 

사람들은 단지 우리가 다리 네 개 달린 여우나 늑대인 줄 알겠지만

 

이 여자는 나에게 비보장형 생리적 현상으로 복수를 하려는 걸까 복수가 용서보다 어려운 걸 모르는 걸까

 

부장에게 사장에게 하지 못한 항의를 잠결에 옆 자리에

 

다이렉트도 평생 안심도 안 믿는 처음 보는 여자에게

누가 봐도 나란히 앉은 자매 같겠지

 

곤히 잠드는 이는 없었다 몸부림치거나 이를 악물거나 갈거나

숨넘어갈 듯 코를 고는 이들 곁이었다 울부짖는 잠꼬대가 밤의 부드러운 소음보다 좋았다

 

당신이 코를 골다가 갑자기 호흡을 멈추게 될까 봐 나는 비스듬히 귀를 기울인다